문맥과 상관없이 자주 인용되는 유명 성경구절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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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레미야 29장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이 성경구절이 가장 먼저 언급된 이유는, 상관없이 매우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경을 읽는 여러분은 이 성경구절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상황에서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는 그분의 선택된 모든 백성들에게 주시는 약속이다.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로 잡힌 히브리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기서 소망은 그들의 실제적이고 물질적인 필요에 관한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마술처럼 잘 풀린다는 말씀이 아니다.
2.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은 특히 운동하는 환경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다. NBA 선수 스테픈 커리는 이 구절을 운동화에, 팀 티보는 얼굴에 붙이는 스티커에 새겼다. 이는 신앙이 있는 프로 선수들에게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 같은 말씀을 기록했다. 바울은 처형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빌립보의 교회가 사망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써 이를 능력의 근원으로 삼아 박해의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역경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서 내면의 힘을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말씀이지, 운동 또는 프로 경기에서 마술처럼 우위를 갖도록 도와주는 말씀이 아니다.
3. 마태복음 7장 1절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만 나를 심판하실 수 있다’는 인용구와 함께, 이 성경구절을 사용하는 이들은 이 말씀을 아무도 분명히 옳고 그르다고 단언할 수 있는 권위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심판하실 수 있다’는 말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성경구절이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의미라면, 우리는 스스로의 판단 체계를 다 버리고 하나님께서 중재하셔서 범죄한 자를 심판해주시도록 믿어야 한다. 분명히 우리의 사회는 우리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더 강력한 규칙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위선적이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성도들로부터 안 좋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증거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내가 너보다 거룩하다’는 태도를 버릴 필요가 있고, 우리 교회는 모두를 환영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4. 시편 46편 10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가만히 있으라’또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을 됨을 알지어다’라는 말씀 속에서 매우 쉽게 기독교적 스웨그(swag·멋이나 스타일을 의미하는 힙합 용어-편집자 주)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더 깊은 평안을 발견하고 안식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암시한다. 안식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생각은 매우 훌륭하지만, 이 구절이 정말로 우리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아니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이 말씀을 읽으라. 이는 방 안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말씀이다. 여러분 나라에서부터 지구 끝까지 모든 이들과 평화롭게 연합하라.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가만이 있어 그분이 하나님 됨을 알자.
5. 야보고서 5장 15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이 성경구절을 아픈 이들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충만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말씀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의 고통은 그들의 잘못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적인 해석은 상상할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비록 하나님은 치유의 신비한 능력이 있으시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음에 이르는 육체적 아픔을 예상할 수 있다.
이 성구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입고 주께서 우리를 일으키실 수 있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고통을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은 더 깊은 은혜, 지혜, 평안을 구한다. 때로 우리는 처음의 아픔이 없이 이러한 영적·심리적 식견에 이르지 못한다. 기독교인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받을 때, 단순히 병이 낫는 기도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라. 역경 속에 일어날 수 있는 구원의 통찰력을 발견하면서, 고통 속에 기대어 보라.
[출처] 크리스천투데이 https://www.christian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