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야 하는가?


 

ⓒ픽사베이 

주후 1세기에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 하에 있던 유대 산헤드린의 요청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된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비기독교인 역사가들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고넬료 타키투스, 사모사타의 루시안, 마이모니데스의 기록들과 심지어 유대 산헤드린의 역사 기록들도 초대 그리스도인 목격자들이 기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증언들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분의 부활에 관해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는 몇 가지 증거들이 있습니다. 법조계의 영재이며 국제 정치인인 고(故) 라이오넬 경 Sir Lionel Luckhoo (그는 전례 없는 245건의 연이은 살인 무죄 선고의 변호로 세계 기네스북 기록에 오른 명사이다)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습니다. “나는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피고 측 법정 변호사로 42년 이상을 보냈고, 지금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는 배심원 재판에서 여러 차례 성공을 거둘 만큼 운이 좋았다. 내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조금도 의심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그 증거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동일한 증거에 대한 세속 사회의 반응은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헌신에 부합하듯 예측대로 냉담하였습니다. 부활이라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는 자연적인 원인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노력일 것입니다. 만일 주장된 어떤 역사적 사건이 자연적인 설명을 거스른다면 (예를 들어, 기적적인 부활), 그 증거가 아무리 훌륭하고 확실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세속학자들은 극도로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그 증거를 다룹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실질적인 정반대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자연적인 원인을 고집하는 것은 증거에 대한 공정한 (따라서 적절한) 조사에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베르너 폰 브라운 Wernher von Braun 박사와 그외 다수의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대중적인 철학의 편견을 가지고 증거를 대하는 것은 증거의 객관성을 방해한다는 점에 우리는 동의합니다. 폰 브라운 박사는 "오직 한 가지 결론만 믿도록 강요 받는다면 … 과학의 객관성 그 자체가 침해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자, 이런 내용을 알고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몇 가지 증거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첫번째 증거들


우선, 우리는 명백히 진실한 목격자의 증언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 변증가들은 수백 명의 목격자들의 증언을 인용했으며, 그 중 일부는 자기 자신들의 경험을 문서로 남겼습니다. 이 목격자들 중 상당수는 증언을 부인하기보다는 오랜 고문과 죽음을 기꺼이 단호하게 견디어 냈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의 증언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인 것을 입증해 줍니다. 역사적인 기록 (사도행전 4:1-17; 플리니우스의 트라야누스에게 보내는 서신 10편, 97쪽 등)에 따르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신앙을 포기함으로써 고통을 피할 수 있었지만, 기꺼이 고난을 견디기로 택하였고, 죽기까지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순교는 주목할 만하지만, 반드시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는 순교를 통해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확실히 보여 줌으로써) 자신이 믿는 자임을 입증한 것이지, 믿음 자체를 검증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장 초기의 기독교 순교자들로부터 주목할 만한 점은 그들은 자신들이 고백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혹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거나, 보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만일 부활이 전부 거짓이라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부활을 끝까지 증언하였을까요? 누가 과연 박해와 투옥과 고문과 죽음 앞에서, 그것이 무익한 거짓말인 줄 알고도 그것에 매달리겠습니까?


2001년 9월 11일, 자살 테러범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이 고백한 바를 믿었지만 (그들이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음으로 입증된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믿은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그들에게 내려온 전통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초기 기독교 순교자들은 첫 세대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보았다고 주장한 것을 참으로 보았거나, 아니면 보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직접 부활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가장 잘 알려진 사람들 중에는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 후에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변화를 겪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그들은 목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숨었습니다. 하지만 부활을 목격한 후에는 거리로 나아가, 점점 더 격렬해지는 박해에도 불구하고 담대하게 부활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의 갑작스럽고도 극적인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재정적인 이득을 노린 것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사도들은 부활을 전파하기 위하여 그들의 모든 것, 그들의 생명까지도 포기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두번째 증거들


두 번째 증거들은 특정 핵심 회의론자들, 특히 바울과 야고보의 변화과 관련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초대 교회를 격렬하게 박해하던 자였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바울이 설명하듯,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교회를 잔인하게 박해하던 자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사심없이 교회를 옹호하는 자로 즉각적이고도 격력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수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그의 확고한 헌신으로 인하여 가난과 핍박과 채찍질과 투옥과 사형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바울처럼 적대적이지는 않았지만 회의적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자, 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바꾸었 버렸습니다. 초대 교회에 보낸 야고보의 편지들 중 하나라고 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서신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야보고도 바울처럼 자신의 증언을 위하여 기꺼이 고난 당하였으며, 죽음으로 그의 믿음의 진정성을 입증하였습니다 (사도행전과 요세푸스의 “유대 민족의 유물” 20장 9과 1절 참조).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셋째와 넷째 증거들


세번째와 네번째 증거들은 빈 무덤에 대하여 적들이 증언한 사실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예루살렘에서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공개적으로 처형되고 장사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여전히 무덤에 있었다면, 산헤드린은 그 시체를 발굴하여 공개적으로 전시함으로써, 부활은 사기라고 폭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 예루살렘에서 뿌리를 내리는 일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예수님의 몸이 사라진 것 (따라서 빈 무덤)에 대해 설명하려고 시도하면서, 제자들이 그 몸을 훔쳐갔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빈 무덤의 사실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여기에 가장 일반적인 세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첫째, 제자들이 시체를 훔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자들은 부활이 사기인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것을 위해 기꺼이 고난 받거나 죽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실된 목격자의 증언에 관한 첫번째 증거를 참조하십시오). 공언하였던 모든 목격자들은 실제로는 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였고, 이에 자신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음모 가담자들 중에서, 자기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친구들이나 가족의 고난을 막기 위해서라도 분명 몇몇 사람은 사실을 실토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첫세대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히 잔인한 박해를 당하였고, 특히 주후 64년에 발생한 로마의 대화제 이후에는 더 심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황제 네로가 그의 궁전을 확장시키기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로마에 불을 지른 후, 그 혐의를 벗으려고 로마 내의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을 돌렸습니다). 로마의 역사가 코넬리우스 타키투스 Cornelius Tacitus는 (대화제 이후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출판된) 그의 <로마 제국 연대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네로는 대중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계층에 죄를 씌우고 가장 끔찍한 고문을 가하였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의 뿌리가 된 크리스투스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우리 총독들 중 하나인 본디오 빌라도의 손에 극도의 형벌을 받았다. 그런 후에 굉장히 해로운 이 미신이 잠시 억제되었으나, 다시 발발하여 악의 첫 근원이었던 유대 지방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끔찍하고 부끄러운 것들의 중심이 되고 인기를 얻는 로마에까지 퍼져 나갔다. 따라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자들이 먼저 체포되었고, 그 후 그들의 정보에 기반하여, 엄청나게 많은 다른 사람들이 로마에 불을 낸 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에 유죄 판결을 선고 받게 되었다. 모든 종류의 조롱이 그들의 죽음에 더해졌다. 짐승의 가죽으로 덮인 그들은 개에 찢기어 죽거나,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낮이 끝나면 야간 조명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화염에 던져져서 불에 타 죽었다" (연대기, 15장 44절).


네로 황제는 그의 정원에서 열리는 파티에 그리스도인들을 산채로 불태워 조명을 비췄습니다. 그런 끔찍한 고통의 위협을 받으면 분명히 누군가는 진실을 자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믿음을 저버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도리어, 그리스도께서 부활 이후에 보이신 많은 기록들과 부활의 소식을 위해 기꺼이 고난과 죽음을 감수했던 수백 명의 목격자들에 대한 여러 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치지 않았다면, 빈 무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죽은 척 한 후, 나중에 무덤에서 도망쳤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불합리합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온 몸이 찢기고, 창에 찔렸습니다. 신체 내부에 손상을 입었고, 엄청난 출혈을 하였으며, 질식을 당하였고, 그의 심장은 창에 찔렸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또는 이런 일을 당한 다른 어떤 사람이라도) 그러한 수난에서 살아 남아, 죽은 척 하다가, 삼일 동안 밤낮으로 아무런 의료적 처치도 받지 않고, 음식과 물도 없이 무덤에 앉아 있다가, 그 무덤을 봉인하고 있던 거대한 돌을 치운 후, (핏자국도 남기지 않고) 몰래 도망하여,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설득하여 믿게 만든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을 믿는 것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다섯번째 증거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증거는 목격자들의 증언의 특이성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주요한 부활 이야기에는 여성이 최초의 주요 목격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여성들이 심하게 천대를 받던 고대 유대와 로마 문화에서 볼 때는 매우 이상한 이야기 입니다. 그 당시 여성들의 증언은 하찮게 여겨졌기 때문에, 일축해 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1세기의 유대 지방에서 대 사기행각을 벌인 자들이 그들의 주요 증인으로 여성들을 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부활이 사기였다면, 그들은 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모든 남성 제자들을 제외하고, 가장 무시 받고 신뢰할 수 없는 여성 목격자들을 택하였겠습니까?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William Lane Craig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세기 유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이해할 때 정말 특이한 것은, 빈 무덤 이야기가 여성을 빈 무덤을 최초로 발견한 자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은 1 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낮은 사회 계층이었다. '여자에게 율법을 전수하려거든 차라리 태워 버려라', ‘남자 아이를 얻은 자는 복이요, 여자 아이를 얻은 자는 저주다’ 라는 오랜 랍비들의 가르침도 있다. 여성의 증언은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심지어 유대인의 법정에서는 여성이 합법적인 증인으로 설 수 없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빈 무덤의 첫 증인들이 여성들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후에 전설적인 기록이 생겨났다면, 그 기록은 분명히 베드로나 요한과 같은 남성 제자들이 무덤을 처음 발견한 것으로 묘사하였을 것이다. 여성이 빈 무덤의 첫 증인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들이 실제로 빈 무덤의 첫 발견자였다는 현실을 반증해 준다! 이는 복음서 기자들이 당혹스럽더라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기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또한 부활 사건의 전통이 전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 Dr. William Lane Craig, quoted by Lee Strobel, The Case For Christ, Grand Rapids: Zondervan, 1998, p. 293)


요약


이러한 여러가지 증거들 : 목격자들의 분명한 진실성, (그리고 사도들의 경우, 강력하고 설명할 수 없는 변화), 핵심적인 적대 세력들과 회의론자들이 순교자로 돌아서는 회심과 그들의 명백한 진실성,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 빈 무덤에 대해 인정한 적들, 이 모든 일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시작되고 확산된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여자들의 증언, 또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여성의 증언의 중요성, 이 모든 것들이 강력하게 부활의 역사성을 입증해 줍니다. 독자들이 이러한 증거들을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권면합니다. 이런 증거들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러한 증거들을 숙고해 볼 때, 라이오넬 경의 진술에 확고히 동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거가 너무나 압도적으로 강력하여, 조금도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증거를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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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gotquestion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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